[거침없이 연극리뷰] ‘매직 이프(Magic If)의 상상력’으로 정전(正傳)에 도전하다…국립극단의 ‘햄릿’
[거침없이 연극리뷰] ‘매직 이프(Magic If)의 상상력’으로 정전(正傳)에 도전하다…국립극단의 ‘햄릿’
  • 복현명
  • 승인 2024.07.1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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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햄릿’(2024년 7월 5일~7월 29일 명동예술극장, 정진새 각색, 부새롬 윤색·연출)은 원작의 ‘묘미’와 ‘힘’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작품이다. 사진=국립극장.
국립극단의 ‘햄릿’(2024년 7월 5일~7월 29일 명동예술극장, 정진새 각색, 부새롬 윤색·연출)은 원작의 ‘묘미’와 ‘힘’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작품이다. 사진=국립극단.

[스마트경제] #.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새롭게 찾아간다.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4명의 연극평론가들이 거침없는 연극리뷰를 연재한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주간이며 포스트드라마 권위자인 문학박사 김기란 평론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이자 숭실대학교 교수 백로라 평론가, ‘한 줄도 좋다, 우리 희곡’의 저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객원교수 정수진 평론가, 계간 ‘한국희곡’ 편집주간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방위적인 연극평론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동시대 연극 읽기’의 저자 대경대 연기예술과 교수 김건표 평론가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주).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햄릿’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의 하나다. 그 대중성은 ‘복수담’의 구조를 취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원수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심장이 쫄깃해지는 긴장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죽은 아버지가 유령으로 등장하여 자신이 동생 클로디어스에게 독살당했음을 밝히고 햄릿에게 복수를 당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는 복수의 이유와 대상을 알고 있음에도 대단원에 이르기까지 햄릿의 복수가 지연된다는 데 있다. 

피비린내 나는 통쾌한 액션 활극은 커녕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고 망설이는 햄릿을 지켜보아야 하는 인고(?)의 드라마가 바로 ‘햄릿’이기도 하다. 

그러나 ‘햄릿’의 정수는 바로 이러한 ‘복수의 지연’에 있다. 

셰익스피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햄릿’에서 우리가 복수의 액션 자체가 아닌 복수의 명분을 탐색하는 햄릿의 ‘사유’ 과정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선과 악, 삶과 죽음, 부패와 정의, 방관과 실천(행동) 등등. 통쾌한 복수극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복잡하고 심각한 주제를 던져놓고 끈질기게 사유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원작 ‘햄릿’의 묘미이자 셰익스피어의 힘이기도 하다. 


◇아니, 햄릿이 공주라니!

국립극단의 ‘햄릿’(2024년 7월 5일~7월 29일 명동예술극장, 정진새 각색, 부새롬 윤색·연출)은 이러한 원작의 ‘묘미’와 ‘힘’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작품이다. 

이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과감하게 원작을 해체, 재창조한 것이 특징인데 그 발상과 상상력이 상당히 엉뚱하고 전복적이다.

‘왕이 되고픈 절대 복수자 공주’, ‘편견과 통념을 깨트릴 악한 공주의 재림’(국립극단 보도자료)과 같은 홍보 문구에서 짐작되듯이 이 연극의 주인공 햄릿은 왕자가 아니라 공주다. 

주인공의 성별뿐 아니라 성격, 욕망, 가치관도 다르다. 그러니 주인공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연극의 주제 역시 원작과 다를 수밖에 없다. 

아니, 햄릿이 공주라니! 현대적으로 각색·연출된, 실로 다양한 버전의 ‘햄릿’을 보아왔지만 햄릿이 공주로 등장하는 해괴한(?) 연극은 실로 처음이다.  


◇‘다름’의 전경화, 정전에 대한 도전 

여기서 ‘해괴함’은 공연의 ‘한계’가 아니라 ‘다름’을 지적한 것이다. 햄릿을 공주로 설정한 것만이 아니다. 

원작을 해체해 재창조한 방식 자체가 상당히 독특하다. 

이는 ‘햄릿’을 보면서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의미 있는 대사, 행동, 혹은 장면들이 이 공연에서는 의도적으로 생략되거나 묘하게 변형돼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과 관계된다. 

유령의 출몰 장면, 햄릿의 유명한 독백 장면(‘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극배우들의 극중극 장면, 클로디어스가 기도하는 독백 장면, 오필리어가 노래 부르며 물에 빠져 죽는 장면, 희극성이 돋보이는 묘지기의 무덤 장면, 햄릿과 레어티스의 결투 장면, 거투르드가 독배 마시는 장면,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칼을 맞고 죽는 장면, 포틴브라스 왕자의 침공과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을 알리는 결말 장면 등은 그 예가 될 수 있다.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고 동시대 관객의 요구에 따라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보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관점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관람할 경우 상당한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사진=국립극장.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고 동시대 관객의 요구에 따라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보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관점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관람할 경우 상당한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사진=국립극단.

이것은 ‘햄릿’을 볼 때마다 연출가의 독창적인 관점이나 무대 미학을 포착하기 위해 눈여겨보는 장면으로서 일종의 관극 포인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국립극단의 ‘햄릿’ 무대에서는 이러한 장면들의 의미가 상당 부분 변형되거나 훼손돼 있다. 

이것은 셰익스피어 원작에 대한 도전이자 셰익스피어의 정전을 선호하는 엘리트 문화(혹은 취향)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단지 원작이 대단하다는 이유로 이해가 되지 않는 연극을 수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연극 본연의 매력을 외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라든가 “동시대의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여부를 기준으로 원작 숭배자와 타협 없이 마음껏 각색을 진행했다”(국립극단 보도자료)라고 밝힌 각색자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즉 이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고 동시대 관객의 요구에 따라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보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관점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관람할 경우 상당한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매직 이프Magic If의 상상력’

소위 말하는 ‘원작 숭배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는 국립극단의 ‘햄릿’은 ‘매직 이프’의 상상력을 통해 창조된 것으로 보인다. 

‘매직 이프’(만약 ~라면)는 가정적 사고력을 통해 배우의 창조적 연기를 이끌어내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훈련 방법이지만 상상력이 요구되는 다양한 영역에서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에 햄릿이 남성이 아니라면? 햄릿의 복수가 선과 정의를 실현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왕비 거투르드가 클로디어스와 결혼한 것이 사랑이나 욕망 때문이 아니라면? 애초에 아버지 유령의 말이 거짓말이었다면? 등등 매직 이프를 활용하여 원작과 완전히 다른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국립극단의 ‘햄릿’에서는 햄릿 공주가 등장한다. 사진=국립극장.
국립극단의 ‘햄릿’에서는 햄릿 공주가 등장한다. 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의 ‘햄릿’에서는 햄릿 공주가 등장한다. 

또한 복수의 이유도 아버지 유령의 부탁이나 클로디어스의 악과 불의를 응징하기 위함이 아니다. 

따라서 선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복수의 명분도 사라진다. 그것은 빼앗긴 왕좌를 되찾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로써 복수의 명분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햄릿의 내적 갈등 장면은 술을 마시며 광기에 찬 행동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대체된다. 

햄릿이 클로디어스를 죽이고 왕관을 빼앗아 머리에 쓰고 죽어가는 결말 장면은 가장 파격적인 방식으로 햄릿의 캐릭터와 욕망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거투르드도 클로디어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햄릿 공주의 왕좌를 보장받기 위해 결혼한 것이다. 

가장 허탈한 것은 복수의 원인이 무너지는 지점이다. 선왕은 클로디어스가 독살한 것이 아니라 동쪽의 포틴브라스가 자객을 보내서 살해한 것으로 밝혀진다. 

따라서 모든 인물이 죽고 새로운 지도자(포틴브라스)가 등장하는 결말 장면은 원작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햄릿 공주의 어리석음과 성급함과 광기 때문에, 햄릿의 왕국은 멸망해 포틴브라스가 기획하는 전쟁의 전초기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한 국가의 비극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국가의 지도자가 되거나 혹은 권력을 탐하는 데서 초래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사회적 문제의식의 공유

이외에도 석연치 않은 죽음을 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상황, 기성세대의 완고함과 청년세대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클로디어스와 햄릿의 세대 갈등, 연극에 대한 사유, 예술가를 소외시키거나 배제하는 후진적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 등도 주목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반영하여 동시대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 왕국은 정말 최악이다!”라는 대사가 유독 반복적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관객과 공유하고자 하는 이 작품의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학적인 무대, 텍스트를 배반하는

연극의 주 무대는 발목 깊이의 물로 채워져 있고 그 한쪽에 왕좌를 상징하는 철제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진=국립극장.
국립극단의 ‘햄릿’ 연극의 주 무대는 발목 깊이의 물로 채워져 있고 그 한쪽에 왕좌를 상징하는 철제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진=국립극단.

이 연극의 주 무대는 발목 깊이의 물로 채워져 있고 그 한쪽에 왕좌를 상징하는 철제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물 때문에 자유로운 연기동작이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동작의 불편한 이미지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이와 아울러 바로 여기서 억울한 죽음, 진상의 왜곡, 권력을 향한 탐욕, 도취와 광기 등이 재현되는 것과 관련하여, 무대공간은 덫, 감옥, 자멸, 죽음 등을 환유한다고 볼 수 있다. 

어둠과 물로 채워진 연극의 무대는 초반의 장례식 장면에서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에 이어서 장례식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때 무대 위에 실제로 비가 쏟아지고, 검은 옷에 검은 우산을 든 인물들이 침묵 속에서 열을 맞춰 걸어 다닌다. 

이 장면은 어두운 색채 이미지, 물의 물질적·상징적 이미지, 그리고 규격화된 보행의 동작 이미지 때문에 수많은 유령(시체)이 무대 위를 걸어 다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무대의 이미지가 가장 미학적으로 연출된 것은 결말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모두 죽어서 물 위에 쓰러져 잠겨 있다가 잠시 후 조용히 일어나 문밖으로 걸어 나가는 장면이 그것이다. 

죽은 자들이 밖으로 나갈 때 무대 뒷벽에 설치된 문이 열리는데 이때 비로소 빛으로 가득 찬 문밖의 공간이 관객의 눈에 들어온다. 

어둠과 빛의 이미지를 통해 죽음과 삶의 공간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상징적 무대연출이라 할 수 있다. 


◇정전에 도전하는 ‘연극 문법’에 대한 고민 

다만 박상봉 특유의 감각적이고도 상징적인 무대가 셰익스피어의 정전에 도전하는 이 연극의 지향점과 부합하는지의 여부는 따져 볼 일이다. 

이것은 이미지와 상징을 구축하는 무대의 표현방식뿐 아니라 연출이나 연기 방식 면에서도 미적 통일성 여부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극단의 ‘햄릿’이 ‘원작 숭배자와 타협 없이 마음껏 각색’한 텍스트를 무대화한 것이라면 원전을 해체하거나 변경시킨 ‘전복적인 상상력’을 무대, 연출, 연기의 영역에서도 구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국립극장.
국립극단의 ‘햄릿’이 ‘원작 숭배자와 타협 없이 마음껏 각색’한 텍스트를 무대화한 것이라면 원전을 해체하거나 변경시킨 ‘전복적인 상상력’을 무대, 연출, 연기의 영역에서도 구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의 ‘햄릿’이 ‘원작 숭배자와 타협 없이 마음껏 각색’한 텍스트를 무대화한 것이라면 원전을 해체하거나 변경시킨 ‘전복적인 상상력’을 무대, 연출, 연기의 영역에서도 구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연기 부분에서 햄릿(이봉련)과 폴로니어스(김용준)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는데 이것은 무엇보다 비극과 희극이 섞여 있는 듯한 셰익스피어 연극에 부합할 뿐 아니라 복잡한 인간 내면을 섬세하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데서 연유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잠시 유보돼야 할지 모르겠다. 이들의 연기 방법은 분명 ‘정전’의 연극 문법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립극단의 ‘햄릿’이 발상과 문제의식의 새로움을 넘어서 완성도 있는 무대를 보여줬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이러한 지적이야말로 ‘정전’의 연극 문법에 매달려 있는 낡은 비평적 관점을 노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로운 실험은 언제나 호응과 비판이라는 두 가지 평가를 동시에 받는 법. 특히 변화를 통해 발전을 모색하는 예술 주체들은 언제나 기존의 공고한 관습이나 관점의 벽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극장을 나오면서 ‘재미있다’고 이야기했던 관객들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동시대 관객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연극을 지향한 덕분일 것이다. 

 

백로라(연극평론가)/ 숭실대 교수,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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