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식] 유럽, 인터넷에 헌법적 변화 도입…신정보보호법 파장
[하재식] 유럽, 인터넷에 헌법적 변화 도입…신정보보호법 파장
  •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 승인 2018.04.18 1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재식의 미디어빅뱅 : 유럽의 반격
유럽연합, 페이스북 및 구글 겨냥해 새 정보보호법(GDPR) 시행

[편집자 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전면화로 인해 지난 100년 동안 익숙했던 미디어 환경이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사업자와 넷플릭스, 아마존 등 신규 콘텐트 사업자들이 수 억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성 신문, 방송, 매거진 사업자는 생존과 나락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다. 미디어 산업은 본질적으로 오락과 여가적 속성이 강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언론산업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미디어혁명이 세상 어느 한 곳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이유다. 이와 같은 미디어빅뱅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하재식 교수가 스마트경제에 미디어산업 현장 칼럼을 연재한다.


유럽연합 / 사진=구글
유럽연합 / 사진=구글

 

베스타거 EU집행위원, 인터넷 역사의 한 획을 긋다

유럽의 새로운 프라이버시 정책이 인터넷과 그 이상을 바꿀 것이다.

 (2018년 3월19일 와이어드 매거진)

유럽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형 악재가 되고 있다.

(2017년 6월30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을 배경으로 쾌속질주해 온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유럽에서 탈세, 개인정보 침해, 공정경쟁 위반 등의 이유로 곤경에 처해 있다. 유럽연합(EU) 측의 공세에서 총대를 멘 주인공은 EU 집행위원회의 ‘경쟁’ 분야를 총괄하는 마그레테 베스타거(49) 위원이다. 덴마크의 부총리 출신인 그녀는 ‘IT 기업의 저승사자’라는 닉네임까지 얻으며 실리콘밸리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대한 EU 측의 총공세를 이해하려면, 먼저 베스타거가 가진 디지털혁명에 대한 생각을 엿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초, 경제잡지 와이어드가 그와 가진 인터뷰는 그녀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데 작은 단초가 된다. 당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술은 많은 측면에서 보다 열리고, 투명한 사회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동시에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개인들을 상대로 한 감독과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또한 사적인 공간은 예측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상업화됐다.”

이런 우려는 그녀의 삶에도 반영된다. 베스타거는 평소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위치 추적 기능을 꺼놓고 있다. “알고리듬한테 답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다. 이는 자유주의자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게 그의 변이다. 이는 이용자에게 보다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복지를 확대한다는 미명 아래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획득하고, 맞춤형 광고를 대량으로 발송함으로써 돈벌이를 해 온 실리콘밸리 공룡기업들의 사업모델에 대한 그녀의 반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베스타거, 구글·페이스북과 3분야 전면전

그녀의 실리콘밸리를 향한 공격은 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5월25일 EU에서 시행되는 ‘유럽 일반 개인정보보호법(GDPR)’이다. 이 법은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들이 특정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도록 명문화했다. 특히 회사들은 특정 데이터가 왜 수집되는지 뿐만 아니라 그 데이터가 사용자의 행동과 습관 등이 포함된 신상정보를 만들기 위해 활용되는지 여부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 또한 회사는 이용자에게 저장된 개인정보에 접근하고, 부정확한 정보를 수정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세부 규정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소셜미디어가 맞춤형 광고 및 계정에 대한 설정을 할 때 개인정보 항목에서 ‘공유’ 대신 ‘사생활 보호’를 초기설정 상태로 유지토록 의무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진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초기설정 상태로 유지하거나, 이용자의 관계 상태 (Relationship Status), 직장, 교육, 방문 사이트, 이용하는 애플리케이션 등의 정보를 이용해 맞춤형 광고를 보내는 것을 허용해 왔다.

결론적으로 이번 법안은 페이스북, 구글 등이 개인정보를 획득해 이용하려면 이용자의 동의를 얻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최근 “GDPR에 따르면, 업체들은 명백하고 숨김없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사용할 지 설명해야 하고, 어떤 업체와 그 정보를 공유할 지도 이용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업체가 나중에 개인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면, 이용자의 허가를 새로 받아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또한 이 법은 알고리듬을 통한 자동적인 ‘결정’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었다. 예컨대 페이스북이 알고리듬에 따라 특정 개인에게 정치광고를 보낼 경우, 이용자는 이 법에 근거해 페이스북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법을 어길 경우 연 매출의 4%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도이체뱅크는 “법이 시행될 경우 EU 내 페이스북 이용자 중 약 30%가 맟춤형 광고를 거부할 것이며 이 경우 페이스북 매출이 4%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와이어드 매거진은 “법이 규정한 개인 동의, 개인 통제, 명백한 설명 조항 등은 이용자가 인터넷에서 스스로 어떻게 감시받는지 알 수 있도록 하게 될 것”이라며 “사생활 보호 활동가들이 향후 이 법안을 무기로 기업체들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법안은 EU 내 28개국에 거주하는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데이터가 이 지역 밖에서 가공될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데이터관리업체 액시엄의 최고 데이터윤리 책임자는 “GDPR이 향후 10년간 세계에서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세회피처가 아니라 수익을 올린 유럽 국가에 디지털세를 내라

실리콘밸리를 향한 두 번째 압박 카드는 디지털세 도입이다. 3월 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디지털 미디어업체를 상대로 EU 내에서 사업활동을 할 경우 매출이 발생하는 특정국가에 ‘디지털세’를 내도록 강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룩셈부르크와 아일랜드에 지역본부를 세워 그 곳에서 세금을 냈다. 그동안 이들 기업들이 낸 평균 세금은 9.5%에 불과했는데, 기타 비IT 기업들이 낸 23.3%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아마존, 애플, 구글 등이 실제 사업을 해 돈을 버는 국가에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아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EU 정부들 사이에 팽배했다”고 지적했다.

EU가 발표한 방안에 따르면, 세계 매출이 7억5천만 유로, EU 내 매출이 5천만 유로를 초과할 경우 매출의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한다. 물론 이 방안이 시행되려면, EU 의회 뿐만 아니라 회원국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당장 실리콘밸리 측은 “우리가 부당하게 공격당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미국 재무장관도 “미국 회사에 불공정한 세금”이라고 반발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실리콘밸리가 유럽과 미국 간 무역전쟁의 진앙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해 온 트럼프 정부가 EU의 공세에 나몰라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015년 EU가 세금회피를 이유로 미국 기업에 제재를 취하려 하자 미 의회 의원들이 당시 대통령에게 차별적 세금에 대한 보복을 요청한 바 있다.

 

반독점 공세, 이제 시작에 불과

마지막으로 내세우는 카드는 공정한 시장경쟁에 대한 방해 문제다. EU 측은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유럽 내에서 공정한 시장경쟁을 방해하는 등 독점적으로 사업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 EU는 지난해 6월 “구글이 경쟁업체에 불리한 방식으로 검색결과를 조작하는 등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24억2천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당시 이 결정을 주도한 이가 베스타거 집행위원이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대세다. 향후 구글, 퀠컴, 페이스북 등을 상대로 한 반독점 공세는 더욱 구체적이고 거칠게 실리콘밸리 최첨단 기업들을 옥죌 전망이다.

그동안 실리콘밸리 공룡 기업들은 인터넷 이용자의 사생활을 엿보고, 이를 통해 얻은 개인정보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고, 시장지배력을 확대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불어 이런 사업모델은 ‘데이터’와 ‘알고리듬’으로 개인을 감시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켜 간다는 소위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GDPR를 비롯해 EU 측의 총공세가 향후 디지털 시대의 ‘온라인 감시 네트워크’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 점에서 베스타거 집행위원이 태풍의 핵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angelha71@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