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연극리뷰] 아름다운 근대도시 목포에서 만난 두 편의 퍼포먼스 ʻ2024 서울변방연극제 목포 편ʼ
[거침없이 연극리뷰] 아름다운 근대도시 목포에서 만난 두 편의 퍼포먼스 ʻ2024 서울변방연극제 목포 편ʼ
  • 복현명
  • 승인 2024.09.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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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변방연극제(예술감독 김진이)가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서울, 대전, 목포를 이동하며 진행됐다. 사진=변방연극제 목포편 c. 박혜정
2024 서울변방연극제(예술감독 김진이)가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서울, 대전, 목포를 이동하며 진행됐다. 사진=변방연극제 목포편 c. 박혜정

[스마트경제] #.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새롭게 찾아간다. 이에 올해 하반기 연극, 뮤지컬 분야 평론가들이 거침없는 연극리뷰 시즌2를 연재한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주간이며 포스트드라마 권위자인 문학박사 김기란 평론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이자 숭실대학교 교수 백로라 평론가, 월간 ‘한국연극’과 계간 ‘한국희곡’ 편집위원인 조훈성 평론가, '한반도 음악극’ 저자로 ‘연극평론’ 편집위원인 정명문 뮤지컬 평론가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할 예정이다. 

‘거침없이 연극리뷰’ 편집위원은 계간 ‘한국희곡’ 편집주간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방위적인 연극평론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동시대 연극 읽기’의 김건표 평론가(대경대학교 연기예술과 교수)가 맡고 있다(편집자주).

2024 서울변방연극제(예술감독 김진이)가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서울, 대전, 목포를 이동하며 진행됐다. 

1999년 시작된 서울변방연극제는 그 시작부터 변방의 시선을 자처하며 미학적‘사건’의 신선한 감각을 주류 예술 생태계에 투척해 온 공연예술축제다. 

2024 서울변방연극제가 ‘서울’이라는 머리표에도 불구하고 대전을 경유 목포에서 마무리된 이유는 ‘이동-연결-순환'을 지향하는 올해의 축제 기획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문화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가 변화되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특정한 공간과 시간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여 공연(장)은 이동하며 다양한 관객과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려 한다. 

만남을 위한 이동 과정 자체가 공연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공연은 극장 밖을 나서 동행한 사람들이 배우와 관객의 역할 구분 없이 함께하는 퍼포먼스가 된다. 

’시간과 장소, 행동의 동시성에서 벗어나면서도 어떻게 우리가 지금 여기를 함께 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는 기획 의도를 내세운 2024 서울변방연극제에서는 서울의 관객들이 대전과 목포로 이동해 그곳의 일상을 낯선 공간에서 만났다.

이번 2024 서울변방연극제는 프로그래머 큐레이팅과 공모를 통해 선정된 총 12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그중 목포에서는 ’변방농장/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김혜원, 9/7~9/8, 목포 만호동 일대)와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정현지, 9/7-9/8, 목포 만호동 일대), ’삶의 꼴‘(김선희, 9/8, 목포 유달산) 등 세 편의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100년 전의 근대적 개항도시의 역사를 여전히 품고 있는 목표를 경험하게 해준 김혜원과 정현지의 퍼포먼스를 여기에 소개한다.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이 저절로 수긍되는 퍼포먼스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는 독립예술가 정현지가 몇 달 간의 목포살이를 통해 구성한 작품이다.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이 저절로 수긍되는 퍼포먼스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는 독립예술가 정현지가 몇 달 간의 목포살이를 통해 구성한 작품이다. 사진=변방연극제 목포편 c. 박혜정

◇목포의 밤을 거닐다, 거리의 퍼포먼스

대한제국 고종의 칙령으로 개항한 항구도시 목포는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다.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이 저절로 수긍되는 퍼포먼스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는 독립예술가 정현지가 몇 달 간의 목포살이를 통해 구성한 작품이다. 

포구인 까닭에 주변 섬을 지나는 배들이 모였다 출발하는 목포는 태생적으로 만나고 떠나는 이동의 순환을 품은 도시다. 

바로 그런 목포의 존재 방식을 함축한 말이 ‘목포는 항구다’라는 문장이 아닐까. 

서울 혹은 대전을 떠나 목포로 이동한 관객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함께 ‘밤마실(밤산책)’에 나선다. 

서로의 인생에서 90분을 기꺼이 낯선 공간과 만남에 내주는 것이다. 유달산 기슭을 묵묵히 오르다 보면 눈앞에 나타나는 고요한 밤바다를 만나게 되고 검은 바다는 마치 언제든 떠나도 된다고 그러나 떠남은 돌아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의 만남은 떠남을 전제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같다.

밤마실의 여정은 만호경로당 근처 작은 집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정현지가 무심히 머물며 작업을 시작한 곳이다. 

독립예술가 정현지는 예술가로 존재하고 싶어 낯선 풍경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삶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목표의 바람, 풍경, 포구를 담은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를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타지인 목포에 정박해 목포의 일상과 친밀해졌다. 

그 과정에서 원래 공간을 소유했던 거주인의 ‘인간적인’허락만으로 복잡한 시스템의 조작 없이도 어느 공간이든 캠버스이자 무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개인적 친분이 공공의 행위로 확장되는 퍼포먼스,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를 구성한 것이다.

일본식 적산가옥 틈에 비집고 들어선 작은 집은 천장이 낮고 방은 비좁지만 방마다 창이 있다. 

창밖의 풍경은 실제로는 정확히 구획된 도로변이겠으나 작은 집의 창마다 정현지가 촬영하고 영사한 바닷가 풍경 사진이 붙어 있어, 마치 바닷가의 작은 집처럼 감각된다. 

정현지는 목포의 바닷가 풍경을 도로변 작은 집으로 불어온 것이다. 

근사한 바닷가 풍경이 자리한 작은 방은 그 자체 하나의 그림이 된다. 제법 큰 방에서는 흑백 프랑스 영화처럼 촬영된 목포의 풍경을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와 프랑스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며 타국의 빈방을 채웠던 정현지의 세련된 감각이 이국적으로 살아난다. 

더할 수 없이 ‘쿨한’그 집의 감각은 요란스럽지 않은 무던한 환대처럼 느껴진다. 이방인도 오랫동안 함께 한 이웃처럼 무심히 대하는 낯선 환대의 감각이다!

작은 집을 나선 후 모두 함께 무더운 열기가 올라오는 아스팔트를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선두를 퍼포머(performer) 정현지가 인도한다. 

그녀는 두 손에 소중히 영사기를 들고 있다. 그녀는 걷다가 크고 평평한 벽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준비한 영상을 비췄다. 

이방인인 자신과 토착민인 목포시민의 삶이 순환하는 순간들이 담긴 영상이다. 

그 순간 그녀가 목포에서 만난 풍경과 존재들이 흑백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장소 이동에 따라 배경처럼도 활용돼 낯선 공간에 입체감을 주고 공간의 의미를 지정한다. 

어둠에 잠긴 조용한 동네 전체가 영화관이 되는 흥미로운 경험이다. 

공사 중인 초등학교, 작은 텃밭, 좁은 골목을 따라 나타나는 버려진 빈집과 바로 그 옆 강아지 짖어대는 가정집 사이를 걷는 여정이 이어진다. 

번잡한 도구도 요란스런 장치도 없이 ‘걷는다’라는 일상적 행동에 집중한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는 이방인들을 무심히 품어주는 낯선 공간의 환대를 몸으로 감각케 한 놀랍도록 세련된 퍼포먼스였다.
번잡한 도구도 요란스런 장치도 없이 ‘걷는다’라는 일상적 행동에 집중한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는 이방인들을 무심히 품어주는 낯선 공간의 환대를 몸으로 감각케 한 놀랍도록 세련된 퍼포먼스였다. 사진=변방연극제 목포편 c. 박혜정

습하고 더운 열기와 풀숲의 맹렬한 잡초들, 피부에 달라붙는 벌레, 먼바다의 불빛이 어우러지며 누구랄 것도 없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소 들떠 있던 사람들의 어수선함과 수다가 조금씩 잦아들며, 어느새 앞장선 정현지를 따라 느리게 걷는 그 길에서 각자가 생각한 모든 것이 이번 퍼포먼스의 의미가 될 것이다. 

번잡한 도구도 요란스런 장치도 없이 ‘걷는다’라는 일상적 행동에 집중한 ‘윈-윈 아일랜드 Win(d)~Win(dow) Island(s)’는 이방인들을 무심히 품어주는 낯선 공간의 환대를 몸으로 감각케 한 놀랍도록 세련된 퍼포먼스였다.


‘변방농장/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김혜원, 9/7~9/8, 목포 만호동 일대)를 만든 김혜원은 샌드위치를 만든다. 
‘변방농장/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김혜원, 9/7~9/8, 목포 만호동 일대)를 만든 김혜원은 샌드위치를 만든다. 사진=변방연극제 목포편 c. 박혜정

◇조류로 만든 음식,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변방농장/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김혜원, 9/7~9/8, 목포 만호동 일대)를 만든 김혜원은 샌드위치를 만든다. 

2023년 공중제B 편에서는 자신이 가꾸는 일산의 텃밭에서 참여자들이 직접 채소를 수확해 샌드위치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창작자와 농부, 퍼포머와 요리사 사이 어중간하게 위치하던 그녀의 음식 솜씨는 사실 별로였다. 

낯선 식감과 맛, 식재료로는 익숙하지 않은 채소들을 사용한 음식들이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때 식재료로 쓰인 채소들은 기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생명체였다. 그걸 떠올렸을 때 갑자기 숙연해졌던 기억이 난다.

올해 그녀는 목포의 조류를 식재료로 다뤘다. 조류는 생물계의 식물, 동물, 균류에 포함되지 않는 다세포 생물이라고 한다. 

각각 다른 존재들을 조류라는 두루뭉술한 범주로 분류한 것이라고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수온의 변화는 바닷속 조류의 생존도 위협한다. 인간에 의해 인공적으로 키워지는 경우도 많다. 

김혜원의 ‘변방농장/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는 이런 다급한 상황을 자신의 전매특허인 샌드위치 한 상 차림에 담았다. 목포의 샌드위치 가게를 빌려 기후위기와 공연과 조류를 샌드위치로 버무린 것이다.

‘변방농장/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의 참여자들은 목포시 만호로 29번길 7-2에 위치한 ‘오붓한생’빵집 앞에 모였다. 

참여자들은 함께 목포항 인근을 산책하고 그곳에서 자란 혹은 키워진 것들이 인간의 식재료로 소비되는 건어물 거리도 걸었다. 

건어물 가게에서 자연산 미역 선물을 받기도 했다. 목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목포진에도 오른다. 

갈증에 지친 참여자들을 위해 목포산 미역으로 만든 냉국이 마련돼 있다. 냉국으로 목을 축인 참여자들은 골목길을 내려가 빌롱서점에 도착한다.

빌롱서점에는 김혜원이 정성스레 마련한 샌드위치 한 상 차림이 준비되어 있다. 목포에서 자란 조류들로 이뤄진 한 상이다. 

참여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다시마 튀김, 톳카레, 김말이에 디저트까지 준비된 한 상을 받았다. 

김혜원의 ‘변방농장/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는 이런 다급한 상황을 자신의 전매특허인 샌드위치 한 상 차림에 담았다. 목포의 샌드위치 가게를 빌려 기후위기와 공연과 조류를 샌드위치로 버무린 것이다.
김혜원의 ‘변방농장/바다농장_공중제B_조류’는 이런 다급한 상황을 자신의 전매특허인 샌드위치 한 상 차림에 담았다. 목포의 샌드위치 가게를 빌려 기후위기와 공연과 조류를 샌드위치로 버무린 것이다. 사진=변방연극제 목포편 c. 박혜정

상차림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식재료로 쓰일 조류가 사라져 속을 채우지 못한 샌드위치였다. 

참여자들은 앞서 건어물 거리 골목에서 각자 숨바꼭질하듯 숨겨진 쪽지를 찾아냈는데 쪽지마다 기후위기에 처한 우리 바다에서 사라지고 있는 조류들의 자료가 제시돼 있었다. 

가령 2008년에만 해도 마라도 바다에 서식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톳에 대한 설명이 적힌 쪽지를 찾아낸 참여자의 밥상에서 톳이 들어간 카레를 퍼포머 김혜원은 무자비하게 빼앗는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바다에서 톳이 사라졌기 때문에 당신은 더 이상 톳을 먹을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해 무감하던 누구라도 식사 전 밥상에서 접시를 빼앗긴다면 조류가 우리의 일상에 이렇게도 생생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퍼포먼스의 이념이다. 퍼포먼스는 극장 무대 위 배우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을 행동에 나서게 만든다. 소박한 설정이지만 한 상 차림에서 빼앗긴 접시는 바로 이런 퍼포먼스의 이념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중심과 변방이라는 고정된 이분법을 벗어나 이동과 순환의 가능성을 타진한, 2024 서울변방연극제의 작업들은 여전히 발전 중인 창작 과정 중 일부를 미리 공유한 것들이다. 

올해 선보인 작업들은 내년 2025 서울변방연극제에서 분명한 하나의 결과물로 다시 관객들을 찾게 될 것이다. 내년의 서울변방연극제를 놓치지 말고 관람하시길 권한다.

 

김기란(연극평론가)/연세대 문학박사,‘한국연극’ 편집주간, ‘연극평론‘ 편집위원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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