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경제] #.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새롭게 찾아간다.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4명의 연극평론가들이 거침없는 연극리뷰를 연재한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주간이며 포스트드라마 권위자인 문학박사 김기란 평론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이자 숭실대학교 교수 백로라 평론가, ‘한 줄도 좋다, 우리 희곡’의 저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객원교수 정수진 평론가, 계간 ‘한국희곡’ 편집주간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방위적인 연극평론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동시대 연극 읽기’의 저자 대경대 연기예술과 교수 김건표 평론가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주).
“공놀이클럽이 뭐냐고요? 조기축구회? 테니스 동호회? 공놀이클럽은 공놀이하듯이 연극을 하는 곳입니다. 연극은 어른이 하는 공놀이거든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곳. 아까와는 다른 시간이 생겨나는 곳.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곳. 여기는 청(소)년의 놀이터, 공놀이클럽입니다. 그럼 이제, 공놀이 시작! Play Ball!”(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홈페이지, 공연소개)
공놀이클럽의 연극적 지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의 연극은 청(소)년들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둔다.
무엇보다 이들의 연극이 주목되는 것은 청년과 청소년, 그 경계에 있는 영어덜트(Young Adult)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교육적이거나 계몽적인 연극이 아닌, 가볍고 자유분방한 연극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연극을 ‘어른이 하는 공놀이’쯤으로 여기는 공놀이클럽의 무대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퀴어, 가족 연극?
이번에 공연된 작품은 그 제목부터 흥미롭다. 퀴어, 가족 연극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서동민 작, 강훈구 연출, 2024년 8월 2일~11일, 아르코예술극장소극장)이 바로 그것.
여기서 ‘퀴어’와 ‘가족’의 매칭도 부자연스럽지만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의 매칭은 어색하고 기묘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부자연스러움, 어색함, 기묘함의 느낌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비롯된 정서적 반응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뭐가, 왜, 어색하단 말인가?’라는 반문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작품은 ‘가족’과 ‘퀴어’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면서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기존의 작품과 차별화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게다가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이라는 서로 충돌하는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부모 세대와 청(소)년 세대의 갈등을 감각적으로 제시한다. 공연 전체가 장난스럽게 비춰지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테마를 다룬다는 것이다.
◇놀이처럼 장난스러운 출발, 갈등의 암시
이 연극은 마치 놀이를 시작하듯이 장난스럽게 공연을 시작한다.
은빈 역을 맡은 배우(박은경)가 나와서 관객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공놀이를 시작’해 보자며 연극의 출발을 알린다.
그리고 등장인물을 소개하겠다는 멘트에 이어서 실제로 인물의 이름, 나이, 특징 등에 대해 책을 읽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전해준다.
재수생 남은빈(20세)은 주말에 알바를 하고 주중에는 학원에 다닌다.
서울대 사범대학 휴학생 남규빈(24세)은 군대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있으며 머리가 좀 길다.
우미희(56세)는 집안일을 하면서 화장품 방문판매를 다닌다. 이들 가족의 가장이자 집주인 강복자(84세)는 복덕방에 매일 출근한다.
인물 소개에 이어서 시간과 장소도 직접 말해준다. 2010년 여름 뉴타운 논의가 활발했던 은평구 수색동 수정빌라 203동이 바로 이 연극의 배경이다.
제시된 정보를 종합하면 재개발 지역에 살고 있는 소시민의 삶과 가족에 관한 평범한 드라마가 전개될 것처럼 보인다.
출발 지점의 가벼운 분위기,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담담한 목소리와 태도, 가족관계를 이루는 인물들. 이로 보아 심각한 갈등을 예측하기 어려우며 설혹 갈등이 있더라도 훈훈하게 마무리될 것만 같다. ‘가족’ 테마의 판타지이자 뿌리 깊은 선입견이 작동된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초반의 예측은 어긋나고 만다.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심각한 갈등이 노출되고 심지어 그러한 갈등이 속 시원하게 해소되지도 않는다.
사실상 갈등의 원인은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이미 암시돼 있다.
재수생 은빈은 주중에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알바를 해야 하지만 정작 휴학해 시간이 많은 오빠 규빈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엄마와 할머니의 노골적인 ‘차별’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온 은빈은 기숙사가 있는 대학에 진학해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한다.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면서 집안일도 해야 하는 엄마, 우미희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지만 56세가 되도록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자식과 얹혀사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녀의 유일한 꿈은 빌라가 재개발되어 시어머니로부터 아파트 한 채를 받아 독립하는 것이다.
할머니 강복자는 큰 평수의 아파트를 배정받아 다 같이 모여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며느리뿐 아니라 손주들도 이를 원하지 않는다.
이처럼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던 가족 구성원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인물이 바로 규빈이다.
그가 퀴어 정체성을 고백하면서 은폐되어 있던 가족의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그러니 ‘머리가 좀 길다’라고 규빈을 소개한 부분은 일종의 복선에 해당하는 셈이 된다.
◇협소한 가족 공간, 내밀한 사적 공간
극적 상황을 ‘재현’하지 않고 ‘설명’하는(들려주는) 것은 연극의 허구성을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연출 전략이다.
흔히 관객의 정서적 몰입을 방해하고 비판적 시선을 이끌어내고자 할 때 활용된다.
이 작품의 무대세트가 리얼리즘 스타일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먼저 무대는 한눈에 보기에도 조악해 보이는 대소도구들로 채워져 있다.
할머니가 점유하는 중앙의 평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이불과 화장품, 오른쪽에는 접이식 밥상, 뒤쪽에는 플라스틱 통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무대 뒤편에는 상자들이 쌓여 있다. 이러한 무대는 낡고 비좁은 빌라의 실내 공간을 장소별로 구획해 놓은 것이다.
중앙의 비좁은 평상은 할머니가 점유하는 장소로 가족이 모여 식사하거나 함께 잠자는 곳이라는 점에서 ‘가족 공간’을 환유한다.
이곳은 유독 공간의 협소함이 전경화되는데 네 인물이 과도하게 뒤엉켜서 누워있는 장면은 그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이 장면은 과장된 상황 표현 때문에 웃음이 유발되지만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혹은 거리)을 갖지 못하는 가족들의 불안한 존재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불과 화장품이 있는 왼쪽의 공간은 주로 은빈이 점유하지만 그녀가 외출할 때마다 규빈이 몰래 들어가 화장품을 훔쳐 바른다는 점에서 이 공간은 두 인물이 공유하는 내밀한 공간이 된다.
실제로 은빈과 규빈은 엄마와 할머니가 모르는 비밀을 갖고 있다.
은빈이 기숙사가 있는 지방대에 지원하여 독립하려고 한다면 규빈은 트랜스젠더라는 성정체성을 감추고 있다.
이외에도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는 부엌이나 규빈이 화장을 지우기 위해 자주 들락거리는 욕실도 각각 차별화된 공간적 의미를 갖는다.
의자나 소도구의 위치를 재배치함으로써 예식장, 공원, 경찰서 등과 같은 다양한 공간을 표현하는 점도 주목된다. 소극장 무대를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연출력이 돋보이는 부분 중의 하나다.
◇여성과 퀴어의 타자화
이 연극은 초반부터 소격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연출 방법을 활용함에도 묘하게도 후반부로 갈수록 극적 상황에 몰입하거나 인물에 동화되고 만다. 이것은 무엇보다 관객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극에서 다뤄는 가족 갈등은 ‘차별’의 문제와 닿아있다.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가 자연스럽게 내면화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그로 인해 딸과 아들을 공공연하게 차별하는 행위가 바로 가족 갈등의 근원적 원인이 된다.
은빈과 규빈을 차별하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행위도 문제지만, 그러한 행위를 거부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묵인하는 규빈의 태도는 더욱 문제적이다.
따라서 규빈이 이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하는 장면은 상당히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주게 된다.
규빈이 스스로를 ‘여성’으로 호명하는 순간 규빈은 더 이상 하늘처럼 받들어야 하는 집안의 유일한 ‘남성’이자 ‘아들(손자)’이 아닌 존재가 돼 버린다. 심지어 규빈은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타자화되었던 은빈보다 못한 존재, 감추거나 부인하고 싶은 존재로 추락하고 만다.
여기서 규빈은 스스로를 여성으로 호명했을 뿐 그 이전과 동일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를 신줏단지 모시듯 귀하게 모셨던 할머니와 어머니뿐 아니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였던 은빈조차도 규빈을 ‘타자화’한다.
여기서 은빈과 규빈의 입장이 뒤바뀌는 상황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차별’을 묵인함으로써 공범자의 위치에 있었던 규빈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규빈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상황을 외면했던 은빈. 이 둘이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상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상황은 참으로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변신과 다중연기
이 연극에서 배우들은 의상을 갈아입으면서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다.
한 장면에서 은빈 역을 맡았던 배우가 다른 장면에서는 의상을 갈아입고 엄마, 오빠, 할머니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상 갈아입기’가 처음에는 일종의 놀이나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공연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를 띄게 된다.
인물마다 자신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의상을 입고 있기에 의상은 그 자체로 특정한 캐릭터를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별과 연령을 초월해 일인다역을 연기한다는 점에서는 롤란트 시멜 페니히의 ‘황금용’과 유사하지만 하나의 역할을 여러 명이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와 차별화된다.
하나의 캐릭터를 여러 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러한 변신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배우들이 특정 캐릭터의 특징적인 신체 동작, 성격, 말투 등을 정확하게 포착해 표현하기 때문에 관객의 시선에는 어떠한 배우가 연기를 하든 캐릭터에는 변함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규빈이 스스로를 여성으로 호명했다 하더라도 규빈이라는 존재에는 변함이 없다.
규빈은 그 이전이나 이후나 규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배제되는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은빈과 규빈은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의상 갈아입기를 통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다중연기를 보여주는 공연 형식은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청(소)년 연극
이 작품은 가족과 퀴어의 문제를 편견과 차별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규빈이 혼자가 아닌 동생 은빈과 함께 집을 떠나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다.
가족과 사회적 공간에서 타자화됐던 은빈과 규빈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들이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라는 점에서 가족으로부터 ‘함께’ 탈출하는 결말은 가출보다는 독립과 자립의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놀이클럽이 ‘안 착한’ 청(소)년 연극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 도전적이고 과감하게 청(소)년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길 바란다.
백로라(연극평론가)/ 숭실대 교수,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
복현명 기자 hmbok@dailysm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