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식의 미디어빅뱅] 세계적 PR회사 ‘벨 포틴저’의 추락
[하재식의 미디어빅뱅] 세계적 PR회사 ‘벨 포틴저’의 추락
  • 하재식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 승인 2018.02.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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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PR회사 ‘벨 포틴저’, 남아공서 가짜뉴스 주도했다가 파산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전면화로 인해 지난 100년 동안 익숙했던 미디어 환경이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사업자와 넷플릭스, 아마존 등 신규 콘텐트 사업자들이 수 억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성 신문, 방송, 매거진 사업자는 생존과 나락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다. 미디어 산업은 본질적으로 오락과 여가적 속성이 강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언론산업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미디어혁명은 세상 어느 한곳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미디어빅뱅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하재식 교수가 스마트경제에 미디어산업 현장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벨 포틴저는 남아공서 가짜뉴스 주도했다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벨 포틴저는 남아공서 가짜뉴스 주도했다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세계를 무대로 승승장구했던 영국의 세계적  PR 회사 ‘벨 포틴저(Bell Pottinger)’의 몰락은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에게 큰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그 추락의 시작과 끝, 그리고 세부적 과정을 살펴보면 마치 잘 짜여진 드라마 한 편을 시청한 듯하다. 그러나 그 한 편의 드라마가 실은 ‘현실’이라는 점에서, 미디어 업계에 윤리적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1면 기사와 함께 별도로 2개면까지 할애해 벨 포틴저의 몰락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벨 포틴저는 팀 벨(77)과 피어스 포틴저가 1980년대 중반 설립한 영국계 PR 전문회사. 팀 벨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혜성 같은 등장을 이끌었던 대표적 PR 전문가. 1979년 대처가 총선에 나섰을 때 경쟁자인 노동당 (Labor Party)을 상대로 치솟는 실업률과 경기침체를 겨냥해  “노동당이라고 일하진 않는다(The labour isn’t working)”라는 슬로건을 사용토록 자문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벨 포틴저는 홍보와 평판관리, 마케팅과 연설문 작성뿐 아니라 정관계 로비와 검색엔진 최적화까지 홍보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승승장구했다. 2010년 기준, 영국에 기반을 둔 PR업체 중 서비스 수익에서 1위를 달렸다.

‘평판 세탁’의 세계적 중심지로 불릴 만큼 국제적 PR 회사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런던을 기반으로 질주하던 벨 포틴저의 몰락에는 이 회사의 독특한 기업 철학이 큰 몫을 했다. “도덕성은 성직자의 몫일 뿐, PR 종사자가 눈길을 줘선 안 된다”며 “돈벌이가 된다면 ‘세상 어디든, 무슨 일이든 한다 (Go anywhere do anything)”는 모토를 내세우며 마구잡이로 고객을 끌어모았던 것.

이 회사의 독특한 기업 철학이 큰 몫을 했다. “도덕성은 성직자의 몫일 뿐, PR 종사자가 눈길을 줘선 안 된다”며 “돈벌이가 된다면 ‘세상 어디든, 무슨 일이든 한다 (Go anywhere do anything)”는 모토를 내세우며 마구잡이로 고객을 끌어모았던 것.

실제 이 기업의 주요 고객은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인권침해와 민주주의 탄압이란 오명에 시달리던 벨라루스공화국의 알렉산더 루카셴코 대통령, 바레인 및 이집트 등 아랍의 독재 정권들, 여자친구 살해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등 세상의 악동, 독재자, 사기꾼들을 고객으로 모셨다.

이라크 전쟁 당시엔 미국 국방부와 계약을 맺어 미국의 대외 이미지 개선을 도왔다. PR 방법 또한 입방아에 올랐다. 독재와 아동노동 착취 비난에 처한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자 검색엔진을 조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우즈벡 아동 노동” 또는 “우즈벡 인권 침해”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비판적인 기사 대신 그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진행 중인 각종 노력들이 소개됐다. 벨은 논란이 일었던 고객들과 관련, “나에겐 타고난 낙관성이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선한 면에 주목한다”며 자신을 향한 비판을 옹호하기에 바빴다.

벨 포틴저를 추락으로 몰고 간 결정타는 ‘오크베이 인베스트먼트’와 2016년 체결한 PR 계약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업을 세워 사업 확대에 나섰던 인도 출신 굽타 가문이 운영하는 오크베이는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를 연상시키는 정경유착으로 국가적 혼란을 야기시켰다.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 정부였다”는 세간의 평가처럼 주마 정부는 ‘주마’와 ‘굽타’의 이름을  합친 “줍타 정권 (Zupta Regime)”으로 불리곤 했다.

오크베이와 벨 포틴저는 불리한 여론과 비판을 모면하고자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통시키고, 인종갈등을 부추기는 등 비윤리적 홍보기법을 총동원했다. 특히 이들은 ‘백인독점자본(White Monopoly Capital)’이 힘없고 가난한 흑인들을 포로로 삼아 반대 진영을 공격하고 기득권을 확대하고 있다고 여론전을 폈다. 이를 위해 대량의 트윗을 발송하고, 증오를 부추기는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대중 연설에 나서는 등 부와 자원을 총동원해 “백인독점자본이 흑인들로부터 일자리와 교육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광범위하게 퍼뜨렸다. 이 과정에서 홍보 캠페인의 일환으로 100개 이상의 가짜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대량으로 인종갈등을 부추기는 콘텐트를 퍼뜨렸고, 굽타가문의 미디어들과 함께 각종 웹사이트들을 통해 악성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로 인해 미디어 및 정치환경이 극도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급기야 주마 대통령이 조사를 받게 되고, 경제는 침체되고, 인종갈등이 극심해지면서 “굽타 가문이 나라를 포로로 잡았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연이어 “이게 나라냐”는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벨 포틴저를 반대하는 플랫카드를 들기도 했다. 이로 인해 “벨 포틴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관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평가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벨 포틴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제개혁을 위해 PR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굽타 형제의 꾐에 넘어가 가짜뉴스 및 여론조작 등 비윤리적 PR 캠페인의 전위대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이러한 가짜뉴스의 영향을 받은 시민단체들이 백인혐오를 조장하면서 백인들이 실제 생명의 위험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벨 포틴저는 굽타 측 형제들을 국가의 추락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로 이미지 포장을 했다. 한 평론가는 “벨 포틴저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이미 쥐새끼 냄새가 났다”고 지적했다.

벨 포틴저가 홍보에 나섰던 굽타 가문의 비윤리성도 국민적 공분을 낳기에 충분했다. 굽타 가문의 결혼식 때 하객을 태운 비행기가 정부의 양해로 공군기지를 이용하기도 했고, 굽타 가문 측은 정치인들에게 수시로 장관 자리를 제의하고,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건네기도 했다. 한 여성 정치인은 “굽타 측에서 경쟁업체가 운영하는 항공사의 인도 노선 취항을 취소한다면 공공기업장관직을 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객의 위기관리를 맡아온 벨 포틴저는 정작 자신의 사업 위기가 확산되고 있을 때 불을 조기에 차단하기는커녕 수수방관하고, 국가적 혼란의 중심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자충수를 뒀다. 뉴욕타임스는 “벨 포틴저는 열 번 넘게 자신의 몰락을 막기 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위기관리를 엉망으로 했다”고 진단했다. 벨 포틴저의 몰락 과정에는 창업자 팀 벨과 최근 몇년간 직접 회사를 경영했던 제임스 헨더슨(53)과의 권력 암투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이번 사태는 PR 전문가들이 그들의 활동 과정에서 윤리와 공익을 무시할 경우 그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2017년 12월 벨 포틴저는 파산했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는 PR 전문가들이 그들의 활동 과정에서 윤리와 공익을 무시할 경우 그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2017년 12월 벨 포틴저는 파산했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굽타 가문 측도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여온 사업들을 모두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킨지, KPMG, 소프트웨어업체 ‘SAP’ 등 내로라하는 국제기업들도 ‘굽타’ 가문과의 사업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 드라마는 2018년 2월 주마 대통령이 실정과 부패 문제로 대통력 직에서 쫓겨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 포틴저의 ‘백인독점자본’ 캠페인이 끼친 해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요즘 전세계는 가짜뉴스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벨 포틴저는 가짜뉴스를 생산, 유통시키는 등 여론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PR 전문가들이 돈벌이를 위해 영혼을 팔고, 스스로 미디어에 대한 신뢰를 배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벨 포틴저의 PR 활동은 미디어 교과서에 두고두고 회자될 ‘나쁜’ 사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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