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석 변호사의 IP・IT] 해외상품 병행수입, 불법인가요?
[전용석 변호사의 IP・IT] 해외상품 병행수입, 불법인가요?
  • 스마트경제
  • 승인 2019.08.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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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상품을 국내 공식 수입업체가 아닌 일반 수입업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거쳐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병행 수입이라고 합니다. 

여러 국가에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병행수입을 저지하고 싶어합니다. 반면 병행수입업자는 병행수입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얻고 싶어합니다. 

병행수입은 자주 문제가 됩니다. 최근에도 병행수입을 막기 원하는 다국적 기업과 법률상담을 하였는데요, 병행수입, 과연 법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병행수입이란 무엇이고, 왜 문제되는가?

미국 기업 A는 상표 T를 미국특허청(USPTO: United States Patent and Trademark Office)에 등록하고 한국 특허청에도 등록했습니다. 

A는 미국에서 상품 P를 생산한 후 상표 T를 부착하여 미국에 판매하고 한국에도 수출합니다. 이 때 A는 ‘가격 차별 정책’에 따라 한국에서 판매하는 P상품(한국 상품)의 가격을 미국에서 판매하는 P상품(미국 상품)의 가격보다 높게 책정합니다.

A는 상품 P를 한국에 수출할 때 한국의 K라는 업체에게 한국 내 독점수입권을 주고 한국에 등록한 상표 T에 대서도 전용사용권을 설정해 줍니다. K는 한국에서 한국 상품을 판매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X라는 한국 병행수입업자가 등장합니다. X는 미국에서 미국 상품을 싸게 구입한 후 한국으로 들여와 판매합니다.

한국 내 공식 독점수입권자인 K의 공식수입 경로 외에 다른 경로로 “병행”해 상품을 “수입”한다고 해 이를 “병행수입”(竝行輸入, parallel import)이라 하고, 이를 행하는 업체를 병행수입업자라 합니다.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의 한국 상품을 판매하는 K는 미국에서 싸게 미국 상품을 들여와 한국에서 판매하는 X로 인해 영업에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A와 K는 X의 병행수입을 저지하고 싶어집니다.

병행수입, 상표권 침해인가? 

병행수입이 불법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권리소진이론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갑'이 상품을 생산하고 상표를 부착해 '을'에게 판매했습니다. 이후 '을'이 그 상품을 '병'에게, 병은 다시 '정'에게 그 상품을 판매할 때, '병'의 판매행위가 '갑'에 대한 상표권 침해에 해당할까요?

도식적으로 보면 '을'은 '갑'으로부터 상표를 부착한 상품을 구매했을 뿐 해당 상표에 대한 사용허락을 받은 것은 아니고, '병' 역시 갑으로부터 상표사용허락을 받은 바는 없으므로, '갑'은 상표권에 기해 상표부착상품을 판매하는 병에게 상표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권리소진원칙(權利消盡原則, exhaustion doctrine)이 적용됩니다. 

상표부착상품 등 지식재산권 상품이 권리자에 의해 판매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거래행위에 관해서는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이 소진되어 권리자가 재차 지식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다시 A, K, X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X의 병행수입을 저지하고 싶은 A와 K는 X를 상대로 한국에 등록된 상표권 내지 전용사용권의 침해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권리소진원칙에 의거해 미국에서의 미국 상품 판매 이후에는 한국 상표권도 소진되었다고 보아야 할까요?

이 사례가 갑, 을, 병 사례와 다른 점은 X가 미국에서 미국 상품을 구입한 후 이를 한국에서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권리소진이론이 국제적으로도 인정되는지, 국제소진(國際消盡, international exhaustion)이 문제됩니다. 

국제소진에 대해서는 상표권의 속지주의를 강조하며 이를 부정하는 입장과, 권리소진원칙은 국제적으로도 다를 바 없이 적용할 수 있다며 국제소진을 인정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국제소진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병행수입을 부정하고, 국제소진을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병행수입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병행수입 인정 여부는 법정책적인 고려가 크게 작용

국제소진 내지 병행수입의 인정 여부는 법리적 판단보다 법정책적인 고려가 크게 작용됩니다. 전반적으로 선진국에서는 병행수입을 부정하고 개발도상국에서는 병행수입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요건 하에 상표부착상품의 병행수입을 인정합니다. 

1. 진정상품일 것(해당 상표가 외국에서 상표권자 또는 상표권자로부터 사용허락을 받은 사람에 의해 그 수입된 상품에 적법하게 부착된 것일 것)

2. 출처의 동일성 (그 외국의 상표권자와 한국의 상표권자가 동일인이거나 또는 법적이나 경제적으로 동일한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관계에 있거나 그 밖의 사정에 의해 위와 같은 수입상품에 부착된 상표가 우리나라의 등록상표와 동일한 출처를 표시하는 것일 것)

3. 품질의 동일성 (수입된 상품과 우리나라의 상표권자가 등록상표를 부착한 상품 사이에 그 등록상표가 보증하는 품질에 있어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결국, 위 요건이 만족될 경우, A와 K는 X의 병행수입에 대해 상표권 내지 전용사용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병행수입을 부당하게 저해하는 행위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병행수입은 독점수입권자 외의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하여 진정상품을 수입함에 따라 일반적으로 경쟁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지니게 되므로, 이를 부당하게 저해하는 행위는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병행수입, 국내 공인 대리점으로 오인케 할 우려 있다면 부정경쟁행위 해당할 수 있어

그렇다면, A와 K는 병행수입을 저지할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병행수입 자체는 상표권 침해가 아니지만 병행수입업자의 영업 행태가 “외국 본사의 국내 공인 대리점 등으로 오인하게 할 우려”가 있다면 부정경쟁방지법상 (나)목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버버리 병행수입 사건’에서, 버버리 병행수입업자가 '매장 내부 간판, 포장지 및 쇼핑백, 선전광고물'에 버버리 상표를 표시한 것은 이것을 영업표지로 볼 수 없고, 병행수입업자의 매장이 마치 공인 대리점인 것처럼 오인하게 할 염려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즉, 부정경쟁행위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소, 영업소, 매장의 외부 간판 및 명함'에 버버리 상표를 표시한 것은 영업표지로 사용한 것으로서 버버리 본사의 국내 공인 대리점 등으로 오인하게 할 수 있어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병행수입, 특허권, 저작권에서도 문제

병행수입은 주로 상표권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병행수입 상품이 특허실시상품 또는 저작물상품인 경우에는 특허권, 저작권 분야에서도 병행수입이 문제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표권 영역에서는 대법원 판례상 원칙적으로 병행수입이 인정되고 있으나 특허권과 저작권 영역에서는 아직 병행수입 허용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예전에는 상표 분야에서는 병행수입을 인정하는 반면 특허 및 저작권 분야에서는 병행수입은 부정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 Kirtseang v. John Wiley & Sons, Inc. 판결을 통해 저작권 분야에서도 병행수입을 인정하는 태도로 입장을 변경했고, 2017년 미국 연방대법원 Impression Product, Inc. v. Lexmark International, Inc. 판례를 통해 특허권 분야에서도 병행수입을 인정하는 태도로 입장을 변경했습니다.

상표부착상품의 병행수입 뿐 아니라 특허실시상품 또는 저작물상품의 병행수입시에도 병행수입 인정 여부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전용석 변호사
전용석 변호사

▨ 전용석 변호사(법무법인 KCL)는 서울과학고등학교 및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지적재산권(IP) 및 IT 분야 전문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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