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에서 교훈 얻었나? 고집불통 쟈니스의 변화
일본의 고집불통 엔터테인먼트 회사, 쟈니스 사무소(이하 쟈니스)가 마침내 고집을 꺾었다. 쟈니스는 지난 3월 마침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아직 정식 데뷔하지 않은 연습생들의 영상만 올라오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진보한 모양새다.
쟈니스는 그동안 폐쇄적인 운영으로 빈축을 사왔다. 온라인 음원 유통은 하지 않고 CD만 판매했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지 않았으며 소속 연예인들에게 SNS도 금지시켰다. 특히 과도한 초상권 보호로 악명이 높았다. 인터넷 상에 쟈니스 소속 연예인의 사진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으며, 심지어는 언론 보도 및 영화·드라마 홍보 목적의 사진 사용까지 막았다.
저작권과 초상권을 보호해 판매 수익을 손실을 막겠다는 것인데, 인터넷·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지나치게 낡은 방법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일본에 K-POP 한류가 침투하는 빌미를 줬다.
일본 남자 아이돌 시장을 호령했던 대형 연예기획사 쟈니스는 설립된 지 56년이 지났다. 회사 대표 쟈니 기타가와의 현재 나이는 87살.
젊은 시절 기타가와 대표는 참신한 기획과 연출로 수많은 아이돌그룹을 히트시켰다. 그는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던 1960년대 부터 연예 기획을 해왔다.
1987년 히카루겐지(光GENJI)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춤을 추는 퍼포먼스로 일본 가요계에 신드롬을 일으켰고, TOKIO(토키오)·V6·KinKi Kids, 아라시, 칸쟈니∞, KAT-TUN(캇툰) 등의 그룹이 잇따라 히트했다.
특히 일본의 국민 아이돌그룹으로 불린 SMAP(스맙)은 25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활동하면서 쟈니스라는 회사에게 독보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수많은 인기 아이돌들을 거느린 쟈니스는 일본의 남자 아이돌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방송과 언론까지 눈치 보게 할 만큼의 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독점적 지위를 갖춘 뒤 사업도 폐쇄적으로 운영해왔다. 일본 내 시장에서 좀 더 많은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권력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SMAP 해체에 성추행 사건까지…잇따른 악재에 지위 '흔들'
우선 2016년 말 SMAP이 해체됐고, 멤버 중 이나가키 고로,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 3명은 지난해 9월 쟈니스에서 퇴사했다.
올해 4월에는 칸쟈니∞의 메인보컬 시부타니 스바루가 유학을 이유로 탈퇴를 선언했다. TOKIO의 야마구치 타츠야는 여고생 성추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KAT-TUN은 잇딴 사건 사고로 멤버 3명이 팀을 떠났다.
특히 야마구치의 성추행 사건은 전대미문의 불상사로 여겨져 일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쟈니스가 뉴스까지 독점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2006년 데뷔한 KAT-TUN 이후로는 딱히 히트한 그룹이 없는 쟈니스여서, 고민은 더욱 깊다.
최근까지 활동한 SMAP처럼 1990년대 데뷔한 쟈니스 아이돌이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데, 멤버들의 나이가 40~50대가 됐다. TOKIO, V6, KinKi Kids와 같은 그룹이다.
몸만 사린 쟈니스, SM은 유튜브에 뛰어들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해외에서 일어난 K-POP 붐은 유튜브에 힘입은 바 크다.
쟈니스와 달리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유튜브를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2008년 초 유튜브가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부터 제휴 관계를 맺고 소속 가수들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그 결과 소속 가수들은 해외 활동을 많이 하지 않고도 전 세계 팬들을 끌어 모았다. 2009년 소녀시대의 'GEE'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뜨자 춤이나 노래를 따라하는 영상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유튜브를 통해 미리 인지도를 높인 소녀시대는 수월하게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그들은 일본 데뷔 1개월만인 2010년 10월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유튜브를 활용하지 않은 쟈니스는 일본 시장의 독점 구조를 굳히는 데만 신경쓰다 도태되어 갔다. 기획적인 '감'까지 떨어졌는지, KAT-TUN 이후 내놓은 신인들의 성적도 기대에 못 미쳤다.
K-POP이 가져간 일본 시장, 뒤늦게 정신 차린 쟈니스
SMAP까지 탈퇴하면서 쟈니스는 직격탄을 맞았다. 남자 아이돌 시장의 상당 부분을 K-POP 아이돌에게 빼앗겨 온 것도 그제야 실감했다. 일본 매체 토카나는 SMAP 탈퇴 당시 "쟈니스는 한류 아이돌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20년간 톱으로 군림한 쟈니스에게 붕괴의 조짐까지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류를 의식하고 있는 조짐도 나오고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계·폐회식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쟈니스 아이돌그룹을 볼 수도 있다. 4일 일간겐다이는 "기타가와 쟈니스 대표가 소속 연예인들에게 '영어 공부를 하라'는 지령을 내렸다"며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봤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엑소가 펼친 퍼포먼스를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SM처럼 처음부터 유튜브와 손을 잡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쟈니스는 잡은 물고기를 빼앗길까 두려워한 나머지, 다른 물고기 떼들이 지나가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너무 뒤늦은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백종모 기자 phanta@dailysmart.co.kr